낱말잇기

준비 운동

누구도 내게 단약을 하라고 말한적 없다. 일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증상을 줄이기 위해 먹는 약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손에 털어넣는 약의 개수와 용량이 점점 늘어가는게 과연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23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어느 날, 지난 5년동안 복용한 시간이 있으니 점차 약을 줄이라는 의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약을 먹지 않았다. 하루, 이틀, 몇일은 괜찮았다. 그게 첫번째 주를 넘길때즈음 부작용이 시작됐다.

첫번째, 지금까지 겪었던 감정기복은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느껴졌을 정도로 극심한 감정기복이 시작됐다. 두번째, 신체 기능이 현저히 저하됐다. 부작용 기간동안 최소한의 활동을 위해 집근처 편의점을 가기 위해서는 몇차례 휴식과 함께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번째, 망상에 시달렸다. 사고 기능이 재편되지 않고서야 평소의 나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가정과 확신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시도때도 없이 나를 괴롭혔다.

짝꿍의 도움으로 겨우 다시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공황 증상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몇가지 약 중 하나를 내게 한주 동안 ‘추가’ 처방했다. 본전도 못 찾은 시도에 아쉬워 할 기력조차 남지 않은 상태였으나 한 눈에 봐도 꽤 좋지 않은 내원 환자의 상태를 염려하는 모습에 나는 지난 의도를 설명했다. 선생님은 내 말을 듣더니 그건 환경과 정서 상태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점차 시도하는게 좋다고 말하며 안녕을 담은 짧은 인사와 함께 나를 독려했다.

그렇게 벌써 반년이 흘렀다.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복학은 해를 넘긴 일처럼 느껴지는데 내가 다시 추가약과 함께 약을 복용한 지 이만큼 지났다는게 지금도 얼떨떨하다. 병원은 꾸준히 나가고 있다. 약을 복용한 지 두세달이 될 즈음에는 두 달짜리 일도 시작했다. 9-6시 근무여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생계를 생각하면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감사하게도 막상 시작해보니 힘든 와중에도 배울것이 많은 일이어서 돈을 받으며 수업에 나가는 느낌으로 다녔다.

요즘도 나는 단약을 중단한 이후 찾아온 부작용과 함께 지내고 있다. 일정 수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와 일정 이상 데시벨 소리. 두 개를 합치면 난이도는 더욱 올라간다. 하지만 한동안 도시에 살며 직장생활을 하기로 다짐한 나로서는 피한다고 능사가 아니라는걸 알기 때문에 역치를 낮추기 위해 하나씩 시도하고 있다. 처음에는 신체 상태에 대한 관찰이 어려울 정도로 정신없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주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타협점을 찾아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이 시기가 마냥 상흔만 남긴건 아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하니 알게된 점도 분명 존재한다. 삶의 유한성, 그에 따른 인생에서의 선택과 집중. 사회적 혹은 개인적 차원의 환대 방식에 대한 고민. 죽음에 대한 계획 등등. 그리고 지금 이것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상태와 환경에 있는 나는 행운아라는것까지.

Thoughts? Leave a comment

Comments
  1. 첫글 — Feb 19, 2024:

    이끼님의 첫글을 읽을 수 있어 좋아요.

  2. picogreenfrogFeb 24, 2024:

    몇일전 첫글님의 댓글을 볼 수 있어 기뻤어요. 고맙습니다!